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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 보건

국방부, 호국영웅 고(故) 하창규 일병, 76년 만에 귀환

지난해 4월 강원 홍천 발굴유해, 국군 제8사단 하창규 일병으로 확인

 

뉴스투게더 김인숙 기자 | 3월 18일, 6·25전쟁 당시 대한민국을 지키다 24세의 나이로 산화한 호국영웅 고 하창규 일병이 가족의 품으로 귀환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하 국유단)은 지난해 4월 강원특별자치도 홍천군 남면 유치리 금물산 일대에서 육군 제11기동사단과 함께 발굴한 유해의 신원을 국군 제8사단 10연대 소속의 고 하창규 일병으로 확인했다.

 

고인은 올해 국유단이 세 번째로 신원을 확인한 호국영웅이다. 이로써 2000년 4월 유해발굴사업을 시작한 이래로 가족의 품으로 돌아간 국군 전사자는 총 271명으로 늘었다.

 

고인의 유해는 11사단 발굴팀장이 최초 식별한 후, 국유단 전문발굴팀의 정밀발굴 과정을 거쳐 마침내 수습됐다.

 

국유단은 지난해 3월 31일부터 5월 9일까지 11사단과 협력하여 강원 홍천 지역에서 유해발굴을 전개한 결과 총 11구의 유해를 수습했다. 이중 고인의 유해는 4월 17일에 11사단 발굴팀장(상사 정종하)이 최초로 식별했다.

 

이후 국유단 발굴팀장(중사 박기문)과 현장 감식관(나군 오대환) 지도 하 전문 발굴병(예비역 병장 김승현·유승진)이 유해 훼손을 방지하기 위해 8일간의 정밀발굴에 착수했다. 발굴팀은 유해 주변의 공간을 충분히 확보하는 ‘확장’ 작업과 붓 등을 이용해 흙을 미세하게 털어내며 전체 형상을 드러내는 ‘노출’ 과정을 거쳤으며, 4월 24일에 고인의 왼쪽 위팔뼈를 수습할 수 있었다.

 

유가족 유전자 시료는 2011년에 국유단 유가족 찾기 탐문팀이 고인의 아들과 접촉하여 채취했으며, 지난해 유해-유가족 유전자 비교 분석을 통해 가족관계를 최종 확인할 수 있었다.

 

국유단은 매년 현충일 행사가 개최되는 국립서울현충원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시료 채취 부스를 운영하고 있다. 고인의 유가족을 만난 것 또한 2011년 6월 6일 서울현충원(위패봉안관)이었다. 당시 아버지를 참배하기 위해 경상남도 진주시에서 상경한 아들 하종복 씨(1951년생, 당시 60세)를 만나 유전자 시료 채취 협조를 구할 수 있었다.

 

이후 지난해 8월 4일부터 12월 7일까지 발굴 유해에 대한 유전자 분석을 진행했으며, 과거 채취한 유가족 유전자 시료와 비교 분석을 실시한 결과 12월 17일 두 사람의 부자(父子) 관계를 공식 확정했다.

 

고인은 1926년 12월, 경상남도 사천군에서 태어나 1950년 11월에 입대했으며, 국군 제8사단 소속으로 참전한 횡성 전투에서 1951년 2월에 전사했다.

 

고인은 1926년 12월 경상남도 사천군(현 사천시) 곤명면에서 8남매(4남 4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유가족의 증언에 따르면, 장남인 형(고 하수규 씨)이 일제강점기 당시 보부상 일로 타지를 전전했기에 고인이 실질적인 장남으로서 집안을 돌보며 부모님을 봉양했다고 한다.

 

고인은 1949년에 혼인하여 이듬해 첫딸을 얻었으며, 1950년 11월 27일 형과 동반 입대했다. 입대 당시 고인의 아내는 둘째(아들 하종복 씨)를 임신 중이었다. 함께 입대했던 형은 질병으로 인해 귀가했으나, 고인은 부산에서 훈련을 마친 후 8사단 10연대에 배치되어 전선에 투입된 지 약 3개월 만인 1951년 2월 9일, 횡성 전투에서 끝내 전사했다.

 

횡성 전투(1951. 2. 5. ∼ 15.)는 중공군 제4차 공세 당시 국군 제3·5·8사단이 강원 홍천 및 횡성 일대에서 중공군 제39·40·42·66군 및 북한군 제5군단과 벌인 격전이다. 중공군의 공세로 8사단은 막대한 피해를 입었으며, 특히 고인이 속했던 10연대는 연대장 권태순 대령을 비롯한 지휘부 대부분이 전사하거나 실종될 만큼 처절한 사투를 치렀다.

 

호국의 영웅 귀환 행사는 유가족의 요청에 따라 3월 18일 경상남도 진주시에 거주하는 고인의 아들 하종복 씨 자택에서 열렸다.

 

하종복 씨(74세)는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제가 살아생전에 아버지를 모실 수 있게 되어 참으로 다행”이라며, “아버지를 찾기 위해 애써주신 모든 분들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고 전했다. 이어 “지난 2022년에 작고하신 어머니께서 ‘언젠가 아버지를 찾게 되면 꼭 합장해달라’는 유언을 남기셨다”며, “그 뜻을 받들어 어머니 묘 곁에 아버지 가묘를 만들어 두었는데, 이제야 두 분을 함께 모실 수 있게 되어 한을 풀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행사를 주관한 김성환 국유단장 직무대리(육군 중령)는 유가족에게 호국영웅 귀환 패와 신원확인 통지서, 발굴 유품이 담긴 호국의 얼 함(函)을 전달했다. 이어 고인의 참전 경로와 유해발굴 경과, 신원확인까지의 과정을 설명했다.

 

김성환 중령은 “이번 신원확인은 15년 전 유가족의 유전자 시료 채취가 있었기에 비로소 가능했다”며, “유가족의 적극적인 참여야말로 마지막 한 분의 호국영웅까지 가족의 품으로 모실 수 있는 유일한 열쇠인 만큼 국민 여러분의 지속적인 관심과 참여를 간곡히 부탁드린다”고 밝혔다.